목사님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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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28일, 광화문 사거리에서 주최측 추산 3만 여명의 교인들이 비를 맞아가며 기도회를 진행했습니다. 기도회의 이름은 "신사 참배 80년 회개 및 3.1 운동 100주년을 위한 한국교회일천만기도대성회"(이름이 길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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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하는 목회자들이 십자가를 지고 100m 정도를 걸어서 무대위에 올라가면서 시작한 기도회 (아, 이런 퍼포먼스는 제발 안했으면 좋겠습니다ㅜㅜ) 는 회개기도, 순교자 추서패 증정, 설교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지요. 80년 전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일단 신사(神社)참배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네요. 신사는 일본의 신도(新道) 신앙에 따라 일본 신들을 제사지내기 위해 세워진 건물입니다. 사실 신도 신앙이라는 것이 예전부터 내려오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영향력이 있지는 않았는데 국가의 결속을 위해서 19세기부터 국가종교로 만들었지요. 신으로 승격된 일왕도 숭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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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당연히 우리나라에도 신사를 만들고 참배를 강요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930년대 이후에는 전국에 1000개가 넘는 신사를 세우고 아주 심하게 참배를 강요했지요. 기독교는 당연히 우상숭배라고 생각하고 반대를 했는데요, 일본은 '신사참배는 종교가 아니라 국가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의미의 국가 의식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신사참배에 동참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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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대해 기독교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선교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달랐지요. (우리가 잘 아는 언더우드는 신사 참배를 해도 된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교단 별로도 차이가 있어서, 천주교나 감리교, 성공회는 1936년에 신사참배를 허용하기로 결의를 했습니다. 신사참배는 종교가 아니라 국가 의식이라는 일본의 주장을 그냥 받아들인 것입니다.


  신사참배에 가장 극렬하게 반대했던 교단은 장로교였습니다. 당시 기독교인은 약 40만 명 정도였는데요, 그중에 70%정도인 28만 명 정도가 장로교였습니다. 그만큼 영향력도 강했지요. 이에 일제는 장로교가 신사참배를 결의하도록 회유와 압박을 병행합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던 주기철 목사님과 같은 분들은 투옥된 반면, 일부 목사들은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서 신사참배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1938년 9월 11일,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27회 장로교 총회가 열렸습니다. 그 날 분위기를 전하는 글을 요약해 보지요.


  "오전 9시 30분 총회가 재개되었을 때에 교회당 내외에는 수백명의 사복경관으로 완전 포위되었고 강대 아래 전면에는 평남 경찰부장을 위시하여 고위 경관 수십명이 긴 검을 번쩍이면서 기라성같이 자리를 잡고 앉았고 총대들의 좌우에는 그 지방 경찰관 2명씩이 끼어 앉았고 실내 후면과 좌우에는 무술경관 100여명이 눈을 부라리고 서 있었다.

  그 살벌한 분위기는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였다. 주기철 목사, 이기선 목사, 김선두 목사 등 신사참배를 적극 반대하는 유력한 교회 지도자들은 사전에 모두 구금되었고 저들의 압력에 어쩔 수 없이 끌려온 27노회(만주 4노회 포함) 대표 목사 88명, 장로 88명, 선교사 30명 합계 206명이 넋을 잃고 앉아 있을 때에 10시 50분 이미 조작된 각본대로 평양·평서·안주 3노회 연합대표 평양노회장 박응률 목사의 신사참배의 결의 및 성명서 발표의 긴급제안이 있었고 박임현 목사와 길인섭 목사의 동의와 재청이 있었다.

  총회장 홍택기 목사는 전신을 떨면서 ‘이 안건이 가하면 예라고 대답하십시오’라고 물었다. 이때에 제안자와 동의·재청자의 10명 미만이 떨리는 목소리로 ‘예’라고 대답했고 그들 외의 전원은 침묵을 지켰다. 그 침묵은 신사참배의 부당성을 표시하는 것으로밖에 보여지지 않았으므로 수백 경관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일대 위협을 표시했다. 당황한 총회장은 ‘부’를 묻지 않고 그냥 만장일치의 가결을 선언하였다. 이때에 이런 사태가 있을 것을 예상한 선교회는 약속해 두었던대로 방위량 선교사를 선두로 2,3명의 선교사들이 회장의 불법선포에 항의하는 한편 신사참배의 부당성을 주장하려고 했으나 경찰관의 강력한 제지로 발언이 막히자 선교사 30명 전원은 차례로 기립하여 ‘불법이오’‘항의합니다’라고 외쳤다. 봉천노회 소속 헌트(B.F.Hunt, 韓富善)선교사는 무술경관의 제지를 뿌리치고 불법에 대한 항의를 외치다가 그들에게 붙들려 옥외로 축출당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소란 속에 총회 서기는 '신사는 종교가 아니며 기독교 교리에도 어긋나지 않는 애국적 국가 의식이기에 솔선해서 국민정신 총동원에 적극 참가하여 황국신민으로서 정성을 다해 달라'는 성명서를 낭독하였고 평양 기독교 친목회 회원 심익현 목사는 총회원 신사참배 즉시 실행을 특청하였다. 동일 12시에 부회장 김길창 목사의 안내로 전국노회장 23명이 총회를 대표하여 평양신사에 참배함으로써 장로교회마저 그들의 불법 강요에 굴하고 말았다.” 아...ㅜㅜ


  신사참배는 일제의 강압에 의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변명하기도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예배 중에 일왕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는 노래를 부르고, 일본으로 성지 순례를 다녀오고, 국방 헌금에 앞장서고 그러거든요. 심지어 1942년에는 장로교 총회의 이름으로 전투기까지 헌납했습니다! 그 전투기의 이름이 뭔지 아십니까? "조선 장로호"입니다! 감리교는 한술 더 떠서 전투기 3대를 헌납했습니다. 이 전투기의 이름은 무엇이었을지 짐작이 가지요? "감리교단호"였습니다.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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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사참배에 대해서 제일 먼저 공개적으로 참회한 사람은 고 한경직 목사님입니다. 1992년에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템플턴 상을 받으면서 자신이 일제 시대때 신사참배를 했던 것을 참회한다고 고백했거든요. 그리고 2006년부터 여러 교단이 심사참배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회개했는데 이번에는 연합회의 이름으로 크게 회개집회를 열게 된 것입니다. 거의 모든 교단이 참여했다고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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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죄를 참회하는 것은 성경에도 많이 나오는 모습입니다. 다니엘, 느헤미야가 그랬지요. 역사적 공동체로서 조상의 죄를 참회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제 우리가 어떤 삶을 보여주는가 하는 것이지요.

  이제는 신사참배와 같은 노골적인 우상숭배가 강요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은 우상숭배를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하지만 우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대신 섬김을 받고 있는 것, 내가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상 아닙니까? 우리는, 그리고 한국 교회는 과연 우상숭배로부터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번 회개 기도회가 그냥 또 하나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과거 조상들의 변절을 탓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겠습니다. 우리 안의 우상을 내버리고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다짐해야겠습니다. 80년 후,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 대신 회개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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