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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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시간에는 기독교에 천주교,개신교,정교회 등이 들어 있다고 말씀드렸지요? 수학공식으로 표현한다면 기독교=천주교(로마카톨릭)+정교회(동방정교회라고도 하고 그리스정교회라고도 함)+개신교(프로테스탄트)+기타등등 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낯선 정교회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았지요.


   오늘은 이어서 개신교는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간단하게 알아보도록 할까요?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의 교파를 알아보기 전에 아무래도 개신교 전체의 시작을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아서요. 또다시 역사 속으로 들어가야겠네요. 많이들 알고 계실 종교개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중세말에 접어들면서 로마카톨릭은 심각하게 부패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여러 왕들과 투쟁을 벌이기도 했고, 성직자의 자격이 매매되기도 했으며, 민중들에게 면죄부를 팔아 부를 늘리는 성직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성적인 타락도 심각했구요. (1430년에 제프리 초서가 지은 <켄터베리 이야기>라는 책에는 면죄부를 판매하는 어떤 성직자가 면죄부 구매를 꺼리는 여인에게 "당신이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의 성직자와 동침했다는 사실을 남편이 알기를 바라지는 않겠지?"라고 협박하는 장면도 나온다고 하더군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이야기겠지요?) 심지어는 교황권 자체의 권력 투쟁도 심각해서, 한 때는 세 명의 교황이 동시에 자신이 진짜라면서 존재하던 시기도 있었지요. (이것 참.. 도대체 뭐하자는 겁니까...) 아래 그림은 제프리 초서의 초상입니다. 


캡처.PNG


   상황이 이런 식이었으니 특히 지식인들 사이에서 로마 카톨릭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종교개혁 이전에 활동한 인물들 중 종교개혁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을 3명만 들자면 영국의 위클리프, 보헤미아의 후스, 네덜란드의 에라스무스입니다.


   먼저, 영국의 위클리프는 교황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을 비판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카톨릭의 교리에 대해서도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 교회가 교황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무엇보다 모든 교회의 교인들이 성경을 직접 읽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그래서 라틴어로 씌어 있어서 대중들이 읽을 수 없었던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건 정말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지금도 '위클리프성경번역선교회'에서는 전세계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위클리프는 교회의 박해를 받기는 했지만 영국 왕의 보호 아래에서 그래도 1384년에 평온하게 죽었는데요, 로마 카톨릭은 결국 1414년에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1428년에 시체를 파내서 그의 책과 함께 불태워서 강에 뿌렸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있었던 부관참시와 같은 형벌인 셈이지요)


1.PNG


   로마 카톨릭의 정죄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위클리프의 개혁사상은 유럽대륙으로 급속히 퍼져 나가서 보헤미아(지금의 체코입니다)의 후스라는 성직자에게까지 이르게 됩니다. 후스는 로마 카톨릭에 대항하는 급진적인 (매우 성경적인) 설교를 하기 시작했고, 역시 이단으로 정죄되어 화형을 당하게 됩니다. 화형을 당하기 전에 "주여! 저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휴.. 예수님 같은 죽음이었네요. 참, 그가 이단으로 정죄된 큰 이유 중 하나가 회중에게 찬양을 부르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 아시나요? 지금 우리가 교회에서 찬양하는 것을 보면 후스가 얼마나 감격해할까요!


2.PNG


   마지막으로 에라스무스가 있는데요, 당대 최고의 인문학자였던 그는 <우신예찬()>이라는 풍자소설을 써서 로마 카톨릭의 부패상을 통렬하게 비판합니다. (하지만 종교개혁에는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로마 카톨릭 내부에서 개혁을 원했기 때문이지요. 그의 이런 어정쩡한 태도로 인해 양쪽 모두에게 공격을 당하기도 합니다.) 

   에라스무스의 업적 중 이후 종교개혁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일 중 하나는 바로 1516년에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출판한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물론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구요, 학자들이었지요) 라틴어로 번역되기 이전의 성경을 직접 읽으면서 로마 카톨릭이 예수님이나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었는지 더욱 생생하게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로도 여러 책을 저술해서 교회 개혁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지요. '에라스무스가 알을 낳았고, 루터가 부화시켰다.'라고는 말까지 있는것을 보면 그의 역할이 종교개혁에 있어서 얼마나 컸는지 아시겠지요? (물론 그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겠지만요) 결국, 1599년에 교황청은 그의 모든 책을 금서목록에 올렸습니다. 


4.PNG  


   1517년, 로마 카톨릭은 레오 10세라는 교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레오 10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황이라는 제도를 주셨으니 마음껏 누리자!"라고 선언하면서 새 임기를 시작했지요. 하지만 어디 세상일이 사람 마음대로 흘러가던가요?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젊은 신학자 마틴 루터가 이미 터질 듯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있던 상황을 바늘로 톡 찌름으로서 유럽 전체가 폭발하고 맙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해야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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