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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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지난번에 (어휴 벌써 한달이 넘었군요!) 개신교의 시작 직전의 모습들을 살펴 보았으니 오늘은 개신교의 시작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옛날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종교개혁의 이야기에요. (참, 카톨릭에서는 종교개혁이라고 하지 않고 종교분열이라고 한답니다^^) 


   중세말에 로마 카톨릭이 매우 타락했고, 그에 대해 반발이 많이 일어났다는 것 기억하시죠? 로마 카톨릭의 부패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그 유명한 면죄부판매입니다.

   도대체 면죄부가 뭘까요?

   사실 '면죄부'라는 명칭은 오역입니다. '면벌부'라고 고치는 것이 더 좋겠는데요, 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미 용서되었지만 벌은 아직 남아 있는데 (카톨릭에서는 잠벌이라고 하는데요, 연옥에서 이 잠벌을 합니다.) 이것을 면제해 주거나 줄여 준다는 뜻입니다. 대통령 특사랑 비슷한 거라고 볼 수 있지요.

   이 연옥에서의 벌을 줄이기 위해서는 회개의 증거로 선행을 해야 합니다. 십자군에 참여하는 것도 그 벌을 줄이는 방법이었지요. 그리고, 헌금을 하는 것도 벌을 줄이는 방법이었습니다. (이게 문제가 된 것이지요.)

   당시 카톨릭은 성베드로 성당을 보수하면서 이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면벌부를 발행합니다. 성당건축을 위해서 헌금을 내면 면벌부증서를 받게 되고, 그 증서를 보여주고 고해성사를 하면 모든 벌을 면제받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굳이 헌금을 하지 않아도 면벌부를 발행했다고 하더군요. 이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카톨릭이 매우 억울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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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카톨릭의 교리에 따라 면벌부가 정당했다고 하더라도, 아무래도 그 뜻은 변질되기가 쉬웠습니다. 더 많은 봉헌금을 받아내려는 판매업자들이 등장했거든요. 면벌부 판매에 앞장섰던 테젤이라는 수도사가 한 유명한 말이 있지요. "돈 상자에 동전이 떨어지는 순간에 불타는 연옥에서 영혼이 곧장 날아오른다!" 이런이런 면벌부가 부적으로 바뀌어 버린 셈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건축헌금이 문제라니까요)


   (아래 사진은 당시 면죄부를 판매하는데 사용된 금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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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때 혜성처럼 등장한 사람이 바로 당시 34세였던 독일의 수도사 마틴 루터입니다. 루터가 보기에 면벌부의 판매는 교회의 권력을 돈벌이에 사용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라틴어로 된 95개의 논제를 붙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읽지도 못했겠어요) 카톨릭에서 나오려고 한 것은 결코 아니었구요, 카톨릭의 개혁을 위해서 일단 토론을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때만 해도 루터는 이것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결과를 초래할 지 몰랐을꺼에요. (뒷이야기 하나, 교황 레오 10세는 루터로 인한 소란을 처음 들었을 때 '루터는 술 취한 독일인이야. 술에서 깨어나면 생각을 고쳐먹겠지.'라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결국 술에서 안 깬, 아니 더욱 취한 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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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터는 원래 카톨릭 교회를 떠날 생각도 없었고 단지 교회를 위해 건강한(?)토론을 하려고 했었지만, 대화를 거듭할수록, 그리고 성경을 연구할수록 루터는 점점 카톨릭의 교리에 대해서 회의하게 됩니다. 연옥을 부정하기 시작했고, (처음 95개 반박문에서는 연옥을 인정했습니다) 교황의 권위를 부정했지요. 결국 교황 레오 10세는 1520년에 루터의 의견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루터 스스로 자신의 책을 소각하고 의견을 철회하지 않으면 파문하겠다고 통지합니다.

   루터가 어떻게 했을까요? 교황의 칙서와 교회 법전을 태워버립니다! (이야.. 루터도 상남자였군요!!!^^) 그리고 1521년 1월에 카톨릭은 루터를 파문하지요. (그렇다면 이때가 개신교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겠네요!) 루터는 교황과 신성로마제국황제에게 정치적으로 반감을 품고 있던 독일의 군주들의 지지에 힘입어 계속해서 사상을 정리하고 출간합니다.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도 했구요. 그리고 1523년에는 42세의 나이로 16세 연하였던 전직수녀 카타리나와 결혼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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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이번에는 스위스로 눈을 돌려볼까요? 한참 독일에서 루터로 인한 소용돌이가 일고 있던 1522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몇몇의 사람들이 소시지를 먹는 큰 사건이 일어납니다. 소시지를 먹은 것이 뭐 그리 대수냐구요? 그 때가 하필이면 사순절 기간이었던 것이 문제였지요. 카톨릭에서는 당시 사순절 기간에는 육식은 금지하고 있었거든요.

   사람들의 비난이 그들에게 쏟아질 때 그들을 옹호한 사제가 있었습니다. 성경에 그런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지요. 그의 이름이 바로 츠빙글리입니다. (사실은 소시지를 먹는 자리에 츠빙글리도 함께 있었답니다. 먹지는 않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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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츠빙글리는 루터를 알기 전부터도 카톨릭의 문제점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루터와 마찬가지로 성경을 연구할수록 카톨릭의 전통에 회의가 들었거든요. 결국 츠빙글리는 교회보다는 성경의 권위가 더 높다고 주장하며 교회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됩니다.

   당시 스위스는 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마다 있는 의회가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취리히 의회는 곧 츠빙글리와 카톨릭 대표의 공개토론을 마련했고, 토론을 지켜보고는 결국 츠빙글리를 지지했지요. 교황청과 결별한 것입니다.

   이렇게 취리히의 개혁을 주도하고 체계화하면서 츠빙글리는 루터의 사상으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의견이 다른 부분도 있었지요. (당연하지요. 어떻게 다 똑같을 수 있겠습니까?) 특히 성찬식에 대해서는 의견이 결국 합쳐지지 않았어요. (그 내용은 좀 복잡하니까 그냥 넘어가지요) 1529년에 독일의 말부르크에서 당시 유럽의 중요한 종교개혁가들이 모여서 의논했지만 결국 그 문제로 연합은 실패로 돌아가지요. 물론 카톨릭은 기뻐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개신교의 연합은 참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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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1531년, 카톨릭도시연합군이 취리히를 공격합니다. 츠빙글리는 용감하게도 직접 전투에 참가했는데요. (이 사람도 상남자네요) 결국 온몸에 칼을 맞고 죽습니다. 죽기 직전에 고해성사를 하고 죽으라는 카톨릭신부의 권유를 거절하고 "그들이 내 몸은 죽일지라도 내 영혼은 죽이지 못한다"라고 유언하고 죽었습니다. 카톨릭군은 그의 시체를 불태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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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의 위대한 종교개혁가를 살펴 보았는데요. 아직 한 사람 더 봐야 합니다. 종교개혁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오늘의 장로교의 기틀을 마련한 천재, 바로 장 칼뱅이지요. 다음 이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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