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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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이제 오늘은 마지막으로 종교개혁의 완성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 인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그 이름하여 장 칼뱅. 프랑스인이구요,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식으로 발음하면 존 칼빈입니다. 마틴 루터보다 26살이 적은 칼뱅은 종교개혁 운동의 2세대로서, 루터로부터 시작한 개신교의 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개신교에 가장 큰 영향을 발휘하는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지요. (우리 나라의 장로교가 바로 존 칼빈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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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뱅은 원래 법학자였습니다. 원래는 카톨릭교도였지만 (그 시대야 그게 당연하지요, 뭐^^) 20대 초반쯤에 개신교로 개종했지요. 나중에 그는 자신의 회심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나 자신이 교황청의 미신에 매우 밀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깊은 나락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깨우침과 수용력으로 인도한 직접적인 변화를 통해 나이가 들어 이미 제법 완고해진 마음을 변화시켜 개종하도록 인도하셨다." (말도 참 어렵게 하는군요!)


   1533년, 파리 대학의 학장을 위해서 종교개혁적인 설교문을 작성해준 칼뱅은 프랑스 왕의 체포령으로부터 도망쳐서 친구들의 집을 떠돌다 결국 고국을 떠나 종교의 자유가 있었던 스위스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스위스의 바젤에서 1536년에 그 유명한 '기독교 강요'를 집필하지요. 이 책은 당시 개신교를 박해하고 있던 프랑스 왕에게 개신교 신학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설명하려고 저술한 책입니다. 아예 헌정사를 써서 프랑스 왕에게 보냈지요. 물론, 왕은 아예 펴 보지도 않았다고 하더군요^^ 대신 칼빈의 명성은 유럽 전역에 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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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칼뱅은 개신교도들이 많이 살고 있는 스트라스부르로 가려던 중 제네바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의 운명이 바뀌게 되지요. 기욤 파렐이라는 인물을 만난 것입니다.


   기욤 파렐은 당시 제네바에서 종교개혁 사상을 강력하게 설교하고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매우 열정적인 행동가이기는 했지만 치밀한 이론을 겸비한 행정가는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그것을 잘 알고 한계를 절감하고 있던 그의 앞에 그 유명한 칼뱅이 나타난 것이지요.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로 받아들였겠지요?


   제네바를 떠나 학자의 삶을 살겠다며 그의 요청을 계속 거절하던 칼뱅에게 파렐은 이렇게 소리지릅니다.

   "당신은 자신만 생각하고 있구료! 만약 당신이 이곳에서 나를 돕지 않는다면 당신에게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것이오!" 어휴, 정말 막무가내인 사람이네요. 이런 사람을 이기기는 정말 쉽지 않지요. 결국 칼뱅은 그의 청을 수락하고 제네바에 남게 됩니다. 흠.. 고난의 시작이었습니다. 아래 그림이 기욤 파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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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뱅은 파렐을 도와 제네바를 하나님의 도시로 만들려고 합니다. 당시 모든 제네바 시민은 모두 교회의 일원이었으므로 교회의 다스림은 세속의 다스림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제네바 시의회도 처음에는 칼뱅을 도와주었구요. 칼뱅은 엄격한 규례를 만들어 시행합니다. 신앙고백을 만들어서 모든 시민이 그 신앙고백을 준수하겠다는 서약을 해야했고, 거부하면 시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신앙 고백을 거부하거나 부도덕적인 사람으로 찍힌 사람에게는 물건을 팔수도 없었지요. 이런 엄격한 다스림을 통해 시에서는 문란함이 사라지게 되었고, 제네바는 도덕적이며 질서가 잡힌 도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강제적인 방식은 동시에 여러 사람의 불만을 가져왔고, 시의회와의 갈등 끝에 결국 칼뱅은 오히려 자신이 18개월 만에 제네바에서 추방당하게 되지요.


   하지만 칼뱅이 떠난 후 다시 혼란에 빠지게 된 제네바시는 3년만에 다시 칼뱅에게 돌아와 줄것을 요청합니다. 칼뱅은 사실 굉장히 가기 싫어했다고 하네요. 당시 칼뱅은 스트라스부르에서 성경을 가르치며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거든요. 파렐에게 '이 십자가를 지는 것보다 다른 죽음을 100번 당하는 것이 낫겠다.'라고 까지 했다고 하더라구요.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으면 그랬겠습니까!

 

   그래도 칼뱅은 결국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심정으로 제네바로 돌아와서, 이후 죽을 때까지 가르치고 설교하고 다스렸습니다. 그의 엄격함 또한 변하지 않아서 많은 사람을 죽이거나 추방했고, 따라서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 직면하기도 했지요. 그런 가운데서도 제네바 아카데미를 설립해서 신학, 의학, 법학등을 가르치기도 했구요. 그의 가르침을 받으러 많은 사람들이 제네바를 찾아 왔고, 그들이 다시 전세계로 퍼져 나가 복음을 전하면서 동시에 칼빈의 사상을 전파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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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까지 열정적으로 일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직접 실현하고 싶어했던 칼뱅은 과로로 인해 1564년 하나님의 곁으로 떠나게 됩니다. 자신이 죽은 이후에 사람들에게 숭배되는 것을 염려해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묘비도 세우지 말고 묻으라고 유언을 했구요. 지금 제네바에 있는 무덤은 그냥 상징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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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이렇게 위클리프-후스-에라스무스로 이어진 종교개혁의 전야와 루터-쯔빙글리-칼뱅으로 이어지는 종교개혁 시작과 진행에 대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물론 영국성공회를 낳았던 헨리 8세의 결혼 이야기나 청교도운동, 재침례파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지만 그것들은 다음 기회로 미룰게요.


   다음번부터는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서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등의 교단별 역사와 차이점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원래 이거 하려다가 역사이야기로 넘어갔던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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