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궁금해요.

2016.03.04 14:31

1000년만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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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12일, 쿠바의 호세 마르티 공항 VIP실에서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바로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로마 카톨릭의 수장 프란체스코 교황과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 키릴 총대주교의 만남이었지요. 몇몇 언론에서는 이 만남을 두고 1000년만의 만남이라면서 제법 크게 보도하기도 했는데요, 이건 무슨 이야기일까요?  


   초대교회시절, 세계에는 5개의 중심교구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안디옥, 로마,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 이었지요. 각 교구에는 총대주교라고 하는 직책이 있었고, 동등한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로마교구와 나머지 4개의 교구는 차이점이 많았습니다. 지역이 달라서 그랬지요. 아래 지도에서 그리스를 중심으로 보면 로마만 서쪽에 있고 나머지는 다 동쪽에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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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중요한 차이는 언어였어요. 로마는 라틴어를 사용했고, 나머지 4개는 그리스어를 사용했거든요. 문화권이 다르다보니 관습도 차이가 있었지요. 예를 들어, 로마교구에서는 사제들이 독신이었지만, 나머지 교구에서는 그렇지 않았고, 그림이나 조각을 숭상하는 습관도 동방쪽이 강했습니다. (로마교구를 서방교회, 나머지 4개의 교구를 동방교회라고 부릅니다.)   

 

   동방에 있던 교구들 중에서는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로마교회와 콘스탄티노플교회 사이에 긴장감이 있었지요. 로마교회는 자신들이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주장을 하면서 우월적 지위를 요구했고, 동방교회들은 그런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요. 반대로 로마교회가 보기에 동방교회는 동로마제국의 황제의 꼭두각시에 불과했기 때문에 자신이 그들과 동등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영 사이가 안좋았지요.


   신학적인 차이점도 많았습니다. 철학의 발상지인 그리스 문화권 답게 동방교회는 좀더 사변적인 신학을 발전시켰고, 로마교회는 현실적인 것을 중시하는 라틴문화에 따라서 교회의 윤리적인 문제에 더 관심을 쏟았지요. 그러다보니 삼위일체에 대한 견해에까지 차이가 생겨서 큰 분쟁이 일어납니다. 흠.. 하지만 여기에 그런 복잡한 신학논쟁은 안쓰는 게 좋겠군요.^^  

   아무튼 그렇게 사이가 안 좋은 상태가 지속되다가 1054년 드디어 그 사건이 터지고 맙니다. 사건의 전말을 알아보도록 할까요?


   당시 노르만 민족이 남부 이탈리아를 침략하자 로마교황이었던 레오 9세는 동로마제국의 황제와 손을 잡고 남부지역을 탈환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런 레오 9세의 시도는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였던 케룰라리우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탈리아 남부는 그의 관할아래 있었거든요.

   케룰라리우스는 곧 콘스탄티노플안에 있었던 라틴교회를 폐쇄해버립니다. (요즘 국가간에 문제가 생기면 상대국의 대사관을 폐쇄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리고 불가리아 대주교를 시켜서 서방교회를 비난하는 편지를 보내게 하지요. (아래 그림은 레오 9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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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 레오 9세는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훔베르트 추기경을 사절단 대표로 콘스탄티노플로 파견했는데요, 아무래도 인사 정책이 실패한 것 같습니다. 이 분이 아주 꼬장꼬장한 강경파였거든요. (왜 하필 이런 사람을 외교 사절로 보냈는지 모르겠네요.) 그가 보기에는 동방교회는 협상할 대상이 아니라 물리쳐야 할 사탄의 무리였으니 협상이 제대로 이루어질리가 없지요. 도착하자마자 서로 비난하면서 싸웁니다.


  결국 1054년 7월 16일, 예배를 드리고 있는 성 소피아 성당에 훔베르트 추기경이 나타나 강대상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제단위에 종이를 올려놓고는 신발에서 먼지를 털고 사라집니다. 제단 위에 올려진 종이는 "회개하지 않는 이단자 미첼 케룰라리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을 파문한다."고 기록되어 있는 파문장이었고, 그가 외친 말은 "하나님이 보고 판단하시리라"였습니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에게 로마교황의 이름으로 (사실, 그 때 레오 9세는 이미 죽고 없었습니다) 파문이라는 징계를 내린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겠지요! 그날 밤에 콘스탄티노플 여러 곳에서 폭동이 일어났다고 하더군요. 아래 그림은 성소피아 성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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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히 화가 난 케룰라리우스는 거꾸로 훔베르트추기경과 일행을 파문합니다. (그래도 로마교황까지 파문하지는 않았더군요^^) 그렇게 나뉘어져서 지내다가 이후 십자군 전쟁 때 십자군들이 이슬람이 아닌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하자 그 간격이 더욱 벌어져서 지금까지 오게된 것입니다.


   그래도 두 교회 사이에 화해를 시도하는 노력들은 있었는데요, 1965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6세와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인 아테나고라스 1세가 예루살렘에서 만나서 화해를 논의합니다. (사실 이 만남이 정말 교회의 대분열 이후 교황과 동방교회의 지도자간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러시아정교회의 수장인 키릴 총대주교와 교황이 만난 것입니다. 현재 동방정교회 중에서는 러시아정교회가 사실상 실세이기 때문에 언론에서 첫만남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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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물론 이미 1000년 이상 다른 길을 걸어왔던 두 교회의 수장들이 그렇게 만나 카메라 앞에서 끌어안는다고 해서 뭐 그리 큰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서로 비난하며 반목하는 모습보다는 이렇게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기는 하네요. 뭐든지 시작이 중요하니까요.

  

   휴..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여러가지 이유로 나뉘어 다투고 있는 한국교회에도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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