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 그림산책] 고난을 이기며 자기실현을 이룬 화가 기사의 사진
탁용준 ‘여름동화’ 6호, Oil on canvas,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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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갖고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가. 그로해서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에 소망을 기원할 수 있다. 지난 1년도 모두가 빚진 과정이었다. 매일 먹는 밥. 내가 쌀 한 톨이라도 생산한 적이 있었던가. 비와 바람과 햇빛으로 자라고, 농부가 심고 걷고, 정미하는데 손길하나 더하지 못했다. 

끊임없이 마시는 물. 나는 물 한 방울 만들지 못하면서도 마음껏 쓴다. 고난은 어떤가. 고난은 힘들지만 그것은 나를 키우는 매듭 매듭이었다. 그것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고 길을 찾아가지 않았던가. 고난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이가 탁용준 화가이다. 결혼한 지 8개월 되던 1989년 어느 여름, 그는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하다 목뼈가 부러지고 말았다. 목 아래로는 모두 마비돼 꼼짝할 수 없었다.

그 어둠의 터널에서 창문을 통해 ‘궁수별자리’라고 말하는 별을 만나게 되었다. 팔도 움직일 수 없는 그 상황에서 우주의 아름다움은 삶에 대한 의지를 점화시켰다. 재활의 힘을 북돋우는 에너지였다. 우리 주변은 경이로운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하나님은 천지를 선하게 창조하셨다. 그가 별을 아름답게 볼 수 있었던 것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섭리의 손길이다. 어느 화가는 ‘자연 속에 모든 기도가 있다. 그 오묘함을 찾아가는 게 믿음의 길’이라고 말한다. 진짜 장애는 신체적인 것이 아니라 희망을 잃은 것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가장 큰 죄는 절망이 아니라 소망을 버리는 것이다. 탁용준이 쓴 ‘행복’이라는 책을 보면 놀란다. 그의 그림 속에는 행복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것은 의도적으로 꾸민 행복이 아니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지만, 주변에 퍼져 있는 세 잎 클로버의 의미는 ‘행복’이라고 한다. 그런데 행운의 네 잎을 찾다가 다른 세 잎 클로버의 경이로움을 못 보는 때가 많다. 나도 네 잎 클로버를 찾느라 그 들녘에 깔린 세 잎 클로버와 하얀 꽃들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이 행복의 비결이다. ‘일상생활에서 특별한 것을 바라다가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잃지 않기를 오늘도 다짐해 봅니다.’ 나는 탁용준의 ‘동행’, ‘달빛소나타’, ‘밤하늘의 궁수별자리’ 등을 다 좋아하지만 ‘여름동화’가 그의 그림과 삶을 모두 담고 있는 것 같아 더욱 감미롭다. 예수님 얼굴을 한 큰 나무는 두 팔을 벌리고 소년과 소녀를 감싸 안을 듯하다. 사내는 탁용준, 소녀는 그를 27년 동안이나 동행해 온 사랑의 아내 황혜경이라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그들이 앉아 있는 대지는 피아노 건반, 바로 우주의 오케스트라 음악이다. 그의 아내는 음악인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내 인생의 연주자이신 그 분의 손 안에 내 삶의 악기를 송두리 째 맡기고….” 그의 그림에는 가정이 있고, 음악이 있고, 천진한 동심이 있으며, 무한한 그리움과 희망이 가득 차 있다. 삶과 그림이 일치한다. 그림으로 자기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유명한 문인이자 화가였던 헤르만 헷세는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운가’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자기 속에서 나오는 대로 살고 실현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지만 탁용준은 고통과 고난을 통해 다시 태어나고, 그렇게 자기 모습대로 살고 그렇게 그리고 있다.

이석우 (겸재정선미술관장·경희대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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