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복음이 우리 나라에 들어왔을 때 가장 기뻐하며 환영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당시 우리 나라 사회에서 차별을 받고 있던 서자, 여성, 노비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존귀한 존재이며, 특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남자나 여자나 종이나 자유자나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는' 동등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성경의 가르침이 너무나 감동적이었기 때문이지요.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신분을 뛰어 넘어 열심히 복음을 전하다보니 한 교회에 양반과 상인, 천민이 함께 다니기도 하고 때로는 주인과 종이 같이 예배를 드리는 풍경도 있었는데요, 그러다보니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연동교회의 일을 들 수 있습니다. 연동교회는 1894년에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교회인데요, 1905년에 장로선출을 위한 투표를 합니다. 그런데 그 선거에서 갖바치 출신의 고찬익 등의 천민들이 장로로 선출되었지요. 이에 양반들 중 일부가 불만을 품고 교회를 떠나 새로 묘동교회를 개척합니다. 복음 안에서는 모두가 동등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신학 노선 갈등등 여러가지 이유가 복합되어 있습니다만)


   그런데 그 어려운 걸 해낸 분이 있습니다. 전라북도 김제에 있는 금산교회를 설립한 조덕삼 장로님이지요.

크기변환_4.PNG

   조덕삼은(존칭 생략합니다^^;) 지역의 갑부였습니다. 원래 유교를 믿던 보수적인 사람이었는데 어느날 마을을 찾아온 테이트 선교사를 만나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사랑채로 사람들을 초청해서 복음을 전하고 예배를 드리지요. 

  그러다가 1905년에 과수원을 헌납해서 금산교회를 건축합니다. 금산교회는 당시 한국 문화를 고려한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바로 'ㄱ'자로 건물을 지어서 한쪽에는 남성들이 앉고 여성들은 다른 한쪽에 앉아 예배를 드린 것이지요. 게다가 가운데는 커텐을 만들어서 서로 얼굴을 볼 수 없도록 했다고 합니다. 참신한 아이디어 아닙니까?^^ 지금 전라북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요.


크기변환_2.PNG  

크기변환_3.PNG

  그런데 조덕삼의 집에는 이자익이라는 마부가 있었습니다. 이자익은 6세 때 부모를 잃고 힘들게 살다가 조덕삼의 집에 가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17세 때 그 집을 찾아가서 마부가 된 사람인데요, 매우 총명해서 조덕삼의 아들이 글공부를 하는 것을 창문 밖에서 들으면서 글을 깨우치고 외우기 시작했지요. 그것을 알게 된 조덕삼은 아예 이자익이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지요. (대인배의 풍모가 느껴지는군요) 그리고 함께 교회에 출석합니다.


  1909년, 드이어 '그날'이 되었습니다.^^ 장로선출을 위한 투표를 실시했는데 놀랍게도 조덕삼이 떨어지고 이자익이 장로가 된 것이지요. (왜 조덕삼이 안되었는지 너무 신기합니다) 연동교회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조덕삼과 이자익, 아니 교인 전체가 난처해 할 만한 일 아닙니까?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있는 그 때, 조덕삼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조덕삼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긴장했을까요?)

 

  "우리 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자익 영수(당시 집사와 장로 사이의 직책이었습니다)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는 아직 장로가 될 그런 믿음이 없습니다. 선출된 이자익 장로를 잘 받들고 금산교회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겠습니다"

  아, 이 얼마나 놀라운 모습입니까!! 모두들 얼마나 감동했을까요? 하나님은 또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후에 조덕삼은 아예 모든 경비를 후원하며 이자익을 신학교로 보냈고, 이자익은 목사가 되어 금산교회로 돌아와서 담임 목사가 됩니다. 이제는 장로가 되어 있었던 조덕삼 장로님이 더 열심히 이자익 목사님을 도와서 금산교회를 섬긴 것은 당연하구요.


  이자익 목사님도 매우 훌륭한 목회자였습니다. 20여개 교회를 설립하고 세 차례나 장로교 총회장을 역임했지요. 그러면서도 명예, 권력, 재물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큰 교회의 청빙을 거절하면서 농촌 교회를 끝까지 지켰고 심지어는 당시 함태영 부통령이 장관 입각을 제안했는데 "지금까지 목사로 살았으니 앞으로도 목사로 살겠다."며 거절했습니다. 참, 그 장로님에 그 목사님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크기변환_1.PNG


   신분을 뛰어 넘어 겸손함으로 모범을 보인 조덕삼 장로님, 그리고 그에 화답하듯이 열심히 교회를 섬긴 이자익 목사님. 두 사람의 멋진 모습을 보니 마치 바울과 빌레몬, 오네시모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이렇게 멋진 신앙의 선배님들이 계시다니까요!! 

   

  

   



  1. 신분을 뛰어 넘은 겸손 - 조덕삼 장로

    Date2018.08.13 By짱목사 Reply0
    Read More
  2. 최고의 복음전도자 - 빌리 그레이엄

    Date2018.03.02 By짱목사 Reply2
    Read More
  3. 5만번의 기도 응답 - 조지 뮬러

    Date2017.11.10 By짱목사 Reply0
    Read More
  4. 조선의 간디 - 고당 조만식

    Date2017.03.03 By짱목사 Reply0
    Read More
  5. 하나님의 손가락 - 폴 브랜드 박사

    Date2016.10.06 By짱목사 Reply1
    Read More
  6. 일사각오(一死覺悟) - 주기철목사

    Date2016.07.15 By짱목사 Reply0
    Read More
  7. 땅콩박사 - 조지 워싱턴 카버

    Date2016.05.17 By짱목사 Reply2
    Read More
  8. 성서와 조선을 사랑한 무교회주의자 - 김교신

    Date2016.02.01 By짱목사 Reply2
    Read More
  9. 불의 전차 - 에릭 리들

    Date2015.10.06 By짱목사 Reply3
    Read More
  10. 원조 바보의사 - 장기려

    Date2015.09.01 By짱목사 Reply0
    Read More
Board Pagination ‹ Prev 1 2 Next ›
/ 2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