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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떤 남루한 사람이 의사에게 처방전을 받아서 간호사에게 갑니다. 약을 짓기 위해 처방전을 받은 간호사, 처방전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래집니다. 처방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거든요. "이 환자에게 닭 두마리 값을 내주시오."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고 찾아온 간호사에게 의사는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의사고, 의사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이요. 그런데 이 환자는 딱히 아픈 곳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영양실조에 걸린 것이요. 그러면 의사는 어떻게 해야겠소?"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이지요. "내 월급에서 떼시오."  


   2. 퇴원해야 할 환자가 병원장을 찾아옵니다. 입원비가 밀려 있기 때문에 원무과에서 퇴원을 시키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사정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잠시 고민하던 병원장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럼 밤에 몰래 도망치시오. 내가 뒷문을 열어둘테니." "예?" 깜짝 놀라는 환자에게 병원장은 또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어쩌겠소? 돈은 없고 병원 방침은 통하지 않고.. 일단 돈을 벌어야 가족도 먹고 살고 병원비도 갚을 수 있지 않겠소?" 다음날 아침, 원무과에서 난리가 난 것은 당연하겠지요?


   3. 아들이 결혼을 했습니다. 며느리가 혼수로 새 이불을 가져와서 혼자 사시는 시아버지께 드립니다. 새이불을 본 시아버지, 갑자기 같은 교회에 다니는 고학생이 생각납니다. 그 청년이 감기에 잘 걸리곤 했거든요. "얘야, 이 이불, 그 청년 주자꾸나." 시아버지가 원래 그런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새며느리는 타협을 시도합니다. "아버님, 정 그러시다면 새이불은 쓰시고, 쓰시던 이불을 주면 되지 않을까요?" 이에 시아버지는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이 착한 며느리를 쳐다봅니다. "너는 선물로 헌 것을 받으면 기분이 좋으니?"


   이 세개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 사람입니다. '한국의 슈바이처','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작은 예수'등으로 불렸던 성산(聖山)장기려 박사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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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려 박사님은 1911년 평안도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특히 할머니의 신앙교육이 박사님께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더군요. (할머님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1928년, 의사가 되기 위해 경성의학전문학교에 들어가 졸업하고 1940년까지 진료와 강의들을 하며 머물다가 1940년, 평양 연합기독병원 외과 과장으로 가게 되지요. 

   해방 이후, 1947년에는 김일성대학 의과대학의 외과학 강좌장을 맡게 됩니다. (이 때 주일에는 교회에 가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조건으로 그 직을 수락합니다.) 그리고는 1948년에는 환자들에 대한 헌신적인 태도를 인정받아서 북한 과학원으로부터 북한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게 되지요.

   당시 북한에서 주는 학위란 학문적 업적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당성이나 인민에 대한 기여도를 검토한 후 김일성에게 결제를 받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박사님은 당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분이었지요. (크리스천이 유물론적 세계관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습니까? 심지어 김일성대학에서도 수술하기 전에 기도하고 하셨는데요!) 그런데도 박사학위를 받았으니 정말 대단한 것이지요. 김일성도 박사님을 무척 신뢰했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역시 공산주의 아래에서 크리스천으로서의 정체성을 계속 지키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본격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지요. 결국 6.25 전쟁이 일어난 후인 1950년 12월, 중공군이 밀려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박사님은 아내와 아이들을 두고 차남 장가용만 데리고 부산까지 내려옵니다. 중공군이 젊은 사람들을 다 죽인다는 소문이 돌았거든요. 가족을 모두 데려 오지 못한 이유는, 부모님은 늙으셨고 너무 어린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때 함께 오지 못한 것을 평생 후회하셨다고 하더군요.

   박사님은 평생 아내와 자녀들을 그리워하며 45년간 혼자 사셨습니다. 1985년 이산 가족 고향방문단이 결성되게 되어서 국가에서 박사님도 대표 중 한 사람으로 내정했는데요, '일천만 이산가족이 있는데 어찌 나만 특혜를 받겠느냐'라면서 정부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하네요. (사실 이건 좀 너무한 것 같아요..) 결국 박사님은 꿈에도 그리던 아내와 자녀들은 보지 못하고 천국에 가셨고, 대신 2000년 8월에 박사님과 함께 월남했던 차남 장가용박사 (지금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입니다.) 가 50년만에 어머니를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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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사님은 부산으로 월남하자마자 육군병원에서 의사로 일을 하고, 1951년에는 교회 창고에서 무료진료소인 복음의원을 시작하지요. 그리고 국제연합 민사원조사령부의 지원을 받아 1951년 12월 23일에 '복음의원'이라는 정식 병원을 개원하게 됩니다. 이후 거의 평생을 부산지역에서 지내면서 환자를 돌보는데 힘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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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사님은 마음이 따뜻한 의사였을 뿐 아니라 창의적이고 실력있는 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무료 진료를 계속하고 있던 박사님은 돈이 없어서 진료를 받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가슴아파하다가 채규철, 김서민, 조광제와 더불어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만들게 됩니다. 건강할 때 회비를 계속 내어 아픈 사람들을 돕고, 자신이 아플 때는 도움을 받는 지금 건강보험의 원조인 것이지요. 나라도 아직 하지 못한 일을 민간인이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이 의료보험조합은 20만명까지 회원을 두고 활동하다가, 1989년에 국가가 건강보험을 전국민으로 확대하자 회원을 건강보험으로 이관시키고 해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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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 박사님은 철저한 기독교정신에 따라서 일생을 사신 분입니다. 하나님과 늘 친밀하게 지냈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를 소원했습니다. 자신의 묘비에 "주님만을 섬기다 간 사람"이라고 써 달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였지요. 또 부산에서 성서를 연구하는 모임을 만들어 꾸준히 지속하셨습니다. (사실 청십자의료보험도 이 모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또한 매우 폭이 넓고 자유로우셨던 분이기도 합니다. 당시 유명하면서도 기존 교회에서는 꺼려하던 인물인 함석헌 선생님과 50년 넘게 친분을 유지하기도 했고 (청십자의료보험의 1호 가입자가 함석헌 선생님이랍니다^^), 비기독교인들과의 소통에도 힘썼지요. 사실 말년에는 제도권 교회를 떠나서 '종들의 모임'이라는 일종의 무교회주의 모임에 투신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비기독교인들과의 소통을 위해 박사님이 고심끝에 찾아낸 단어는 바로 진실, 사랑, 성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복음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세상이 진실과 사랑과 성실이 넘치는 공동체였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장기려 박사는 그 추상적인 단어들이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지를,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1995년 12월 25일, 묘하게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그날, 박사님은 하늘로 떠났습니다. 남긴 재산이라고는 1000만원이 들어 있는 통장 하나였고, 그마저도 간병인에게 주고 가셨습니다. (그러면서도 평소에 '간디는 재산이 물레 하나 밖에 없었다는데, 나는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 부끄럽다.'고 하셨다고 하더군요ㅜㅜ) 빈소 한귀퉁이에는 1991년에 조카로부터 받은 이북의 아내 김봉숙 여사의 사진이 놓여 있었고, 너무 많은 조문객이 몰려 들어 서울대 병원 근처 교통이 마비되기도 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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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원 이광수가 박사님께 "당신은 성자 아니면 바보요."라고 말했다는 것을 아시나요? 그게 별명이 되었나 봐요. 어느날 불편한 몸을 이끌고 변함없이 무의촌 진료를 나가는 박사님께 어떤 제자가 이야기합니다. "선생님 별명이 '장바보'인 것 아세요?" 박사님은 허허 웃으며 이야기하지요. "전부터 그런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 너도 올해는 나를 따라 살아보는 것은 어떠냐?" 그 제자도 웃으며 말합니다. "에이, 그럼 저도 바보 소리 듣게요?" 박사님은 다시 웃으며 이야기하지요. "바보 소리 듣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나? 세상에서 바보라는 소리 들으면 그 인생은 성공한 거야."


   아.. 저도 바보 소리 좀 들어야겠습니다. 그러구 보니 저도 '장바보'가 될 수 있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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